힘 없는 '소비자기본법'이 오히려 독

[천지일보=손성환 기자] 최근 강남 한 복판에서는 견인차에 올라탄 랜드로버 디스커버리4 차량이 있었습니다. 그 밑에 현수막에는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하는 차’ ‘빨갛게 녹슨 머플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차주 A씨는 새 차인데 시동이 걸리지 않아서 운행도 못해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랜드로버 판매사는 교환도 대응도 하지 않아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동일한 차 랜드로버 디스커버리4 구매자 B씨는 신차를 샀는데 차량 인수 하루 만에 부식을 발견하고, 이틀 만에 엔진룸에서 연기가 나는 일을 겪었습니다. 이후 도장 불량과 재조립 흔적까지 추가로 발견했습니다. 도저히 신차로 보기 어려웠습니다.

B씨는 판매사에 차량 교환이나 적절한 수리 등 보상을 원했지만 판매사는 답이 없고 차일피일 연락을 미루기만 했습니다. B씨는 랜드로버 코리아에도 항의 방문을 했지만 판매사에 떠넘길 뿐 아무런 조치가 없습니다.

1년 전에는 또 다른 랜드로버 디스커버리4 차량 구매자 C씨가 차량 구매 10일 만에 하부가 빨갛게 녹슨 것을 발견했습니다. C씨는 판매사에 항의했지만 판매사는 그때도 지금처럼 소비자에게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고 무대응 일관이었습니다.

C씨는 또 다른 소비자의 피해가 없기를 바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소송은 1년이나 지나서도 계속됐고 C씨는 “판사가 비전문가인 나에게 하부 부식이 운행에 문제가 되는 이유를 밝혀보라고 했습니다” 라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신차가 며칠 만에 하부 부식이 있는 것은 말이 안 되고 교환해줘야 한다고 한 소리를 외치는데도 말입니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차량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이와 비슷한 피해를 당한 이들이 많습니다.

인터넷 카페에서는 시동 꺼짐, 하부 부식 등을 호소하는 이들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판매사와 한국지사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사실상 한국에는 ‘소비자 보호법’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 보호법인 ‘소비자 기본법’ 제16조 제2항과 같은 법 시행령 제8조 제3항에는 소비자분쟁해결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만 있을 뿐입니다.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했을 때 처벌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그러면 ‘공정위 분쟁해결 기준’을 볼까요.

- 품질보증기간 이내에, 재질이나 제조상의 고장 발생 시, 무상수리 및 부품교환이 가능하다.

- 차량 인도 시 하자(판금, 도장 불량 등)가 있는 경우, 7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 차량 인도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주행·안전도 등과 관련한 중대한 결함 2회 이상 발생했을 경우, 제품 교환 또는 환불이 가능하다. 등입니다.

A, B, C씨 모두 이 기준 안에 해당하기 때문에 무상수리, 제품교환 또는 환불 등의 마땅한 조치가 취해졌어야 합니다.

하지만 판매사들은 왜 모르쇠로 일관하고 차만 팔면 끝이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을까요?

현재 공정위 고시인 ‘소비자분쟁 해결기준’은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이 없습니다. 랜드로버 등 수입차 업체들은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약한 ‘소비자 보호법’이 오히려 소비자에게 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전문가들과 일부 국회의원들은 미국의 ‘레몬법’과 같은 강력한 소비자 보호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냅니다. 또 자동차 업체들이 스스로 소비자를 생각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레몬법: 레몬법이란 명칭은 달달한 오렌지인줄 알고 구입했는데 알고 보니 맛없고 아주 신 레몬이었다는 데서 유래. 미국은 1975년 레몬법을 제정해 차량 구입 후 18개월 안에 안전 관련 고장으로 2회 이상, 일반 고장으로 4회 이상 수리하면 차를 교환·환불받을 수 있다.

언제 자동차 회사가 스스로 잘못을 고백하고 소비자를 배려하는 세상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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