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시네마테크KOFA에서 윤정희 데뷔 50주년 특별전 ‘스크린, 윤정희라는 색채로 물들다’ 개막식이 열린 가운데 배우 윤정희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데뷔 50주년 특별전 열어
출연작 중 20편 선정·상영
국내 필름 유실된 첫 출연작
‘청춘극장’ 홍콩서 발굴·공개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참혹한 역사가 막 지난 1960년대 한국영화들은 한 많은 민족, 상처 많은 역사를 가진 한국의 아픔을 위로했다.

이 시기 영화출연으로 인기 반열에 오른 배우가 있다. 1967년 배우 신성일, 고은아 주연의 영화 ‘청춘 극장(강대진 감독)’에 출연한 배우 윤정희(본명 손미자, 72)다. ‘청춘 극장’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 아래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한국 청년들의 활약과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당시 1966년 합동영화사 신인배우 공모에서 120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윤정희는 ‘청춘 극장’ 출연으로 제2회 백마상 신인여우상을 받고, 강대진 감독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는 등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문희, 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 붐을 일으켰던 윤정희는 임권택, 이만희, 신상옥 등 당대 영화계를 이끌었던 거장 감독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배우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2010년에는 이창동 감독의 ‘시’로 스크린에 돌아와 철없는 중학생 손자와 함께 살며 남의 집 가정부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주인공 ‘손미자’ 역을 소화해 LA비평가협회상 여우주연상, 필리핀 시네마닐라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배우 윤정희가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한국영상자료원(KOFA, 류재림 원장)은 22일부터 오는 10월 2일까지 서울 마포구 본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 ‘스크린, 윤정희라는 색채로 물들다’를 연다. KOFA는 윤정희가 출연한 300여편의 영화 가운데 20편을 통해 배우 윤정희가 걸어온 영화의 길을 안내한다.

프로그램으로는 윤정희를 스크린에 앉힌 ‘청춘 극장’, 한국 문예영화의 대표작이자 윤정희의 연기가 돋보이는 ‘안개(김수용, 1967)’ ‘무녀도(최하원, 1972)’, 미스터리 스릴러로서 탄탄한 완성도와 연기력을 보여주는 ‘황혼의 부르스(장일호, 1968)’ ‘여섯 개의 그림자(이만희, 1969)’, ‘시’ 등이다. 단 국내에 필름이 유실된 ‘청춘 극장’과 ‘분례기’는 2007년 홍콩에서 발굴한 중국어 더빙판에 한글자막을 입혀 상영된다.

▲ 배우 윤정희-피아니스트 백건우 부부가 22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76세에도 소녀감성 윤정희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쁩니다.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반세기 동안 영화와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은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드문 일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상영되는 ‘청춘 극장’은 저도 50년 동안 다시 보지 못한 영화예요. 저의 꿈은 제 인생의 마지막까지 영화와 함께 사는 겁니다.”

개막 당일 만난 배우 윤정희는 칠십이 넘은 연세에도 여전히 소녀 같았다. 남편 백건우와 함께 행사 전 인터뷰에 참석한 그는 자신의 데뷔 50주년 특별전에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윤정희는 “아무래도 첫 작품 ‘청춘 극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원작인 ‘청춘 극장’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친구들과 돌려가며 읽었다”며 “‘청춘 극장’은 꿈에 그리던 배역이고 그 작품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한눈에 반했던 ‘오유경’ 역을 뽑는다는 기사에 바로 오디션에 참석했다. 저한테는 굉장히 귀중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데뷔와 함께 전성기를 맞은 윤정희는 ‘여배우 트로이카’ 중 한명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해에만 16편의 영화를 찍었고, 1971년엔 61편이나 출연했다. 윤정희라고 힘든 시간이 없었을까.

▲ 팬들에게 축하받고 있는 윤정희. ⓒ천지일보(뉴스천지)

윤정희는 “추운 날 한강에 빠진다든가, 총이 쏟아지는 순간에 들어가서 촬영하는 것, 또 밤새 자지 않고 촬영할 때 참 힘들었다. 예전에 비하면 지금 영화 촬영 현장은 너무나 행복한 분위기다”고 밝혔다.

윤정희가 반평생 영화인으로 살게 된 원동력은 어디 있을까. 그는 “아무리 영화를 하고 싶어도 주위에서 불편해하면 할 수 없다. 저는 행복하게도 피아니스트 제 남편이 저보다 영화를 더 좋아한다. 제가 영화를 계속하도록 밀어 준다”며 “바이올리니스트인 우리 딸은 국제 심사에 데리고 다닐 정도로 영화 전문가다. 식구들 덕분에 제가 하고 싶은 영화를 할 수 있게 돼서 기쁘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내 나이와 모습에 맞고 시나리오 구성이 좋은 영화가 들어온다면 언제든지 뛰어가겠습니다. 배우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저는 늘 배우를 할 거예요. 하늘나라 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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