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가결됐다는 소식을 듣고서 내가 느낀 소감이다. 지난 2003년 9월 3일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발의한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당시 여당 의원들의 퇴장 속에서 통과된 지 꼭 13년 만의 일이다. 이번에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여소야대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공동발의한 장관 해임건의안이 새누리당 의원 전원이 본회의장을 퇴장한 가운데 찬성 160표로 통과된 것이다.

이번 장관 해임건의안 국회 가결은 헌정사상 여섯 번째다. 현행헌법 이후로 치면 세 번째로, 직전에는 김두관 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됐는데 그 당시에도 야당인 한나라당이 수적 우세를 내세워 노무현 정부에 직격탄을 날리려는 정치적 속셈에서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안을 전격 들고 나왔다. 발단이 된 사건은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시위와 미군 장갑차 점거 시위와 관련한 책임을 장관에게 물은 것인데 공교롭게도 사건발생 당일엔 김 장관은 휴가중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경비 책임이 경찰청장에게 있었지만 한나라당 내부사정상 강경노선으로 치달았던 것인데, 당시 최병렬 대표가 대여투쟁에 소극적이라는 당내 일각의 불만이 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성사시키기에 이르렀다. 당시 언론과 여론에서는 시위 관련 대처는 행자부 장관 책임이 아니라 치안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경찰문제로 그 정치적 책임을 장관에게 묻는다는 것은 지나치고 다수당의 횡포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지라 정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전후 사정, 국민여론 등을 감안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있었다.

물론 김두관 장관은 직접적인 책임이 없었다 하더라도 헌법상 명시된 국회의 권한행사가 있었고, 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상태인 만큼 자신의 진퇴문제에 고민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언론 인터뷰에서도 그런 흔적들을 찾아볼 수가 있는바 “사퇴할 경우 다수당의 횡포에 굴복하는 것이 되고 사퇴하지 않으면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으로 비칠까봐 많이 고민했다”는 김 장관은 청와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국 경색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자진사퇴를 택했는데 그만큼 행정부에 대한 헌법상 국회의 권한을 엄정하게 받아들였다는 말이 된다.

한총련의 미군 스트라이커 부대 훈련장 기습시위는 경비 책임이 있는 경찰청장이 아니라 행자부 장관의 경질을 가져왔다. 경상도 남해군수 출신이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발탁됐을 때 공직사회는 술렁거렸다. 기껏 경력으로 쳐봐야 어촌의 시골 이장, 남해신문사를 운영하다가 민선 남해군수에 당선된 이력이 전부였다. 장관이 되고서도 나이가 어리다, 경력이 못 미친다는 둥 정치권에서 온갖 치욕적인 말들이 나왔지만 다 받아들이면서 장관직을 수행했고, 대통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퇴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후 13년 만에 또 다시 국회에서 장관 해임건의권이 통과됐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여러 말들이 나왔다. 93평 아파트에 전세 살면서 시세보다 2~3억 낮은 전세값(1억 9천만원)에 7년간 인상이 없었다는 점과 CJ건립 88평 빌라를 분양가보다 2억 이상 싸게 구입하면서 매입자금을 농협으로부터 특혜대출을 받았다는 것인데, 청문회에서 여야의원들은 문제점을 따졌지만 김 장관이 “농협에서 책정한 금리일 뿐 낮춰달라거나 압력이 없었다”는 점 등을 반복했으니 일반 국민들에게 이해가 가지 않은 대목도 있었다.

그런 사정에서 야당은 인사청문회 보고서에서 ‘부적격’보고서를 채택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그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임명했는데, 그 때부터 김 장관을 두고서 정치적 알력의 불씨는 피어올랐던 것이다. 김 장관도 강세를 취했다. 취임 일성부터 “청문회 과정에서 온갖 모함, 음해, 정치적 공격이 있었다. … 언론도 당사자의 해명을 전혀 듣지도 않고 야당 주장만 일방적으로 보도했다”며 항변했고, “시골 출신에 지방학교를 나온 흙수저라고 무시한 것이 분명하다”는 말로 야당에 날을 세웠고, 이 말이 또한 언론의 도마에 오른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극회본회의에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은 가결됐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유감’이라며 수용 불가를 결정했다. 이번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에 대해 새누리당은 야당의 수적 우세를 앞세운 ‘의회 폭거’라 비난했고, 야당은 청와대가 애초에 부적격자를 무리하게 장관에 임명했다고 맞서고 있다. 이를 보고 있으려니 13년 전, 새누리당에 의해 김두관 행자부 장관 해임건의안 가결 후 청와대나 정치권이 고수했던 입장이 강산이 변할 만큼 세월이 흘렀어도 이렇게 똑같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정치 행태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전철을 밟고 있으니 의회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보다. 장관 해임건의안 급랭 정국을 맞아 정기국회 운영이 함몰되고 있으니 안타까운 시간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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