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박순미

 

한낮을 머물다
서산에 지는 일몰들이
하늬바람에 휘몰려
새떼 되어 날다가
붉은 꽃잎으로 흩어진다

어둠으로 돌아온 배들이 닻을 내리면
나는 창가에 부끄러운 등불을 내다 걸고
한이 시퍼런 못된 시를 지었다

아슬아슬하게 
절벽을 깎으며 살아가는
문득
창백한 무명지기
지시되어지는 내 그리움의 손짓

붉은 연꽃 몇 송이
파문 지으며 운다

버려진 산에서
버려진 허름한 밤 풍경들이
힘겹게 쌓이면
내게 길들여진 절망은 아름답다

어둠 속으로
구부러진 상처들이 눕는다
방수가 되지 못한 바닥을 뚫고 나와
낙수 지는 내 눈물

아, 껴안지 못한 어머니
모시로 덮여진
찬밥 같은 
허연 젖무덤을 물고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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